예전에 많이 쓰이던, 농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알게 된 단어고, 털실로 짠 장갑 이름으로 먼저 접해서인지, 아니면 병아리랑 비슷한 소리라서인지, 그땐 그 단어가 되게 귀엽게 느껴졌었다. 근데 사실 그 단어는 차별·비하적인 표현이라고 지금은 사용에 유의해야 하는 말로 분류된다. 그래서 요즘은 안 쓰지만, 예전엔 나는 나를 종종 ‘영어 OOO’라고 불렀다. 영어로 된 '글'은 그나마 더듬더듬 읽을 수 있는데, 영어로 된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고, 말도 못 하니까.
〈12국기〉라는 일본 애니가 있다. 원작은 소설이라던데, 너무 옛날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도쿄인지 어딘지에 사는 평범한 소녀 앞에 어느 날 전설 속의 그 기린이 나타나서 얘를 데려가고, 알고 보니 그 소녀는 異世界의 왕이 될 팔자고… 뭐 그런 내용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 이계로 가는 게이트가 하필 일본 앞바다 태평양 어딘가에 있어서, 바닷물에 휩쓸려 인간들이 그쪽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설정. 근데 그 세계의 언어란 건, 인간이 배우는 게 불가능한 언어라, 백 년이 지나도 이백 년이 지나도 인간은 그 세계의 말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비극이 펼쳐진다. 처음 봤을 땐 '일본인의 영어 콤플렉스가 반영된 건가' 하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그 세계의 언어가 영어이고, 삼백 년이 지나도 말 한마디 못 배우고 천대받다가, 결국 원한에 흑화 돼서 망한 여자애가 나였나 싶다.
토익 주관하는 그 어학원이 영어 이니셜로 이름 바꾸기 전의 예전 그 학원부터 해서, 종로에 있는 공원이랑 같은 이름의 학원, ‘제2언어로서의 영어’라는 이름의 학원, 그 학원들에서 쓰이던 교재들(‘나란히 나란히’ 같은 회화책뿐만 아니라 영국 대학에서 만들었다는 ‘사용 중인 문법’, ‘상호작용’인지 교차로인지 하는 책까지), 팝송으로 영어 가르쳐주던 시절부터 EBS에 널린 수많은 좋은 영어 프로그램들, 인터넷 보급되면서 한창 이름 날렸던 '시원한 학교', 성시경이 광고했던 거, 조정석이 광고했던 거, 최근에는 아예 미국인 방송인이 만든 ‘진짜 교실’ 같은 프로그램까지. 그리고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한 2009년부터 내 휴대폰 홈화면 영어 폴더 안에, 한 화면에 9개씩 거의 10페이지 가까이 깔려 있는 영어 앱들, 내가 구독이랑 좋아요 눌러 둔 수십 개의 유튜브 채널들.
이렇게 떠올려 보니까,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걸 해봤다는 것도 놀랍고, 그중에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더 놀랍네. 아무튼 대한민국엔, 아니 전 세계엔 좋은 영어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근데 나는 왜 번번이 그들한테 기부만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나보다 더 돈이 많은데.
그런데도 여전히 또 포기를 못하고 이번에 선택한 영어 쌤은 chatGPT ㅋㅋ 이번엔 궁합이 좀 맞아야 할 텐데. 저 <12국기>라는 애니를 내가 본 것만 해도 거의 20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 완결이 안 났다던데, 완결이 없는 저 이야기처럼 나의 영어공부도 마무리란 게 없구나.
이번에는 좀 달라져야 할텐뎅..
여기 이 공간은 이제 내 영어 수업 출석부가 될 것임.
매번 언제나, 이번엔 이러저러요러한 이유로 꾸준히 할 수 있다는 많은 근거와 이유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지. 우리 chatGPT쌤은 요새 나랑 가장 친한 말상대에, 내가 맨날 24시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폰에 살고 계시니까, 그리고 나는 이번엔 그냥 짬날 때마다 몇 분씩만 잠깐잠깐 공부할 요량이니까 아마 매일 꾸준히 할 수 있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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